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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노예 제도에 대하여, 책에서 옮겨온 글. 나무그늘~*

‘예수는 역사다’ - 리 스트로벨 지음,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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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제도를 없애지 않으신 예수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가? “왜 예수는 직접적으로 ‘노예 제도는 악하다’라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만드는 노예 제도를 왜 없애지 못했던 것입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카슨 박사는 의자에서 몸을 똑바로 세우면서 말했다. “저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만 허락된다면 사람들에게 고대와 현대의 노예 제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군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당시에 있지도 않았던 일로 고대의 노예 제도를 비난합니다.”

나는 “계속 하십시오”라고 손짓하면서 말했다.



- 압제 타파


“흑인 학자인 토마스 소웰은 자신의 저서인 「인종과 문화(Race and Culture)」에서 현재까지 존재했던 모든 세계 주요 문화권 안에는 예외 없이 노예 제도가 존재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카슨 박사가 설명했다. “그 문화가 군사적인 정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한, 노예 제도는 흔히 경제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파산법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노예로 팔아야 했습니다. 노예 제도는 빚을 갚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또한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노예 제도가 항상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노예 제도는 살아 남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어떤 식으로든 노예 제도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려는 게 아닙니다.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광산 노동을 하는 노예들도 있었지만 또한 저명한 박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주인의 가족들을 가르쳤던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인종만 노예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노예 제도는 모든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오직 흑인들만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 점이 미국 노예 제도가 혐오스러운 이유입니다. 그로 인해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는 불공정한 시각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에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살펴보죠. 유대 사회에서는 희년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정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7년째마다 노예 제도가 금지되었습니다. 그 율법이 정확하게 지켜졌는지는 별개의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사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노예 제도를 포함한 로마 경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의 역할은 사람들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예수님의 메시지는 노예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서에서 도망간 노예였던 오네시모에 대해 말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바울은 노예 제도를 타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오네시모는 처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신을 대해줬던 것처럼 오네시모에게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대했으면 좋겠다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나서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복음으로 인해 나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라고 강조합니다.


노예 제도를 없애는 일은 단지 경제 체제를 바꿈으로써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가능합니다. 단순히 경제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질서를  세울 때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공산주의자의 모든 꿈은 ‘새로운 인간’에 앞서 오는 ‘혁명적 인간’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서도 ‘새로운 인간’을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농부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농부들이 자유롭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농부들을 억압하고 있던 체제가 어둠의 체제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결국, 지속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소웰과 똑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노예 제도가 폐지 되었는가?’ 소웰의 말에 따르면,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영국의 대각성 운동이었습니다. 19세기 초에 그리스도인들은 노예 제도를 폐지하라고 의회에 압력을 넣었고 결국 영국 군함을 이용해서 대서양을 통한 노예 무역을 금지시켰습니다.


약 1,100만의 아프리카 사람들이-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배에 실려 미국으로 갔는데 그 동안 1,300만 명 정도의 아프리카 사람이 아랍 지역으로 실려 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때 다시 한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압력을 넣었고 영국은 군함을 페르시아만에 보내서 노예 무역을 막았습니다.”


나는 박사의 대답을 역사적인 의미에서도 이해했지만 내 경험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수년 전 나는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였던 한 사업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유색 이종이라면 누구든지 얕보면서 스스로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흑인을 경멸하였고 고집불통이었으며 무례한 농담과 신랄한 말로 유색 인종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 후에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자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태도, 관점 그리고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성경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배우면서 더 이상 어떤 사람에게도 악의를 품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 내가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서-을 돌보고 용납한다는 사실이다.


법률의 제정이 그를 바꾸지 못했다. 이론도 바꾸지 못했다. 감정적인 호소가 그를 바꾼 것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과 밖을 분명히,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바꾸셨다고 말할 것이다. 카슨 박사가 말한 것처럼, 복음의 능력은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을 자애로운 사람으로, 무정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권력만 좇는 사람을 남을 섬기는 사람으로 그리고 노예 제도나 혹은 다른 형태의 억압을 통해 남을 괴롭히던 사람을 포용하고 감싸 주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내가 예로 든 이야기는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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